올림픽로의 올림픽 기념 조각물


2005년 6월 5일 오후

88 서울올림픽 기념 상징조형물 보기

강남의 삼성역에서 올림픽공원까지의 올림픽로에는 서울올림픽을 기념하는 조각물이 설치되어 있다.
오늘 이 중에서 몇개만 사진으로 찍었다. 관광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강남구에서는 '테헤란로'가 삼성역 4거리에서 송파구에서는 '올림픽로'로 이름을 바꾸어서 올림픽 공원까지 연결된다.

연휴날이어서 시내에 차가 적기는 하지만 차를 피해서 찍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사진은 8월 26일과 9월 1일 추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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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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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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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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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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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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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로



올림픽로 - 삼성역 쪽으로



올림픽로 - 송파구청 쪽으로



서울종합운동장 표지판

이 표지판들은 한자가 현대 중국어(간체자)로 쓰여 있다.
특히 서울의 새로 정한 중국어 표기(首尔)에 주목하라.



올림픽 경기장 안내판 - 여기 한자는 중국의 간체자이다.



올림픽 경기장의 공원 모습



자연과 빛 - 오휘영 작, 1986년
올림픽 공원에 설치된 조각물이다.




자연과 빛 - 오휘영 작, 1986년
올림픽 공원에 설치된 조각물이다.




올림픽로




희고 깨끗한 비둘기는 구민과 함께 살아가는 친근한 벗으로서
화합속에 평화를 추구하는 상징으로 송파구의 상징새이다.




송파발전 저해하는 성남 서울공항 이전하라 - 지역이기주의의 발현이다.
'창덕궁을 이전하라'. '청와대를 이전하라'는 말은 안 나오나?



거리에 있는 분수에서 어린이들이 물놀이를 하고 있다.




삼성역에서 올림픽공원을 향해 올림픽로의 오른쪽으로 따라 걷다보면 공원 근처에 안중근 의사의 글을 새긴 작은 기념물이 보인다. 조각은 그리 잘 되지 않아서 안중근 의사의 글씨 솜씨가 제대로 나타나는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시민들에게 이런 정신을 가진 조상이 있었다는 것을 일깨우는 것만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견리사의 견위수명 (見利思義 見危授命)

[字解]
見(볼 견)
利(이로울 리)
思(생각할 사)
義(옳을 의)
見(볼 견)
危(위태할 위)
授(줄 수)
命(목숨 명)

[意義]
안중근(安重根) 의사가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며 뤼순 감옥에서 쓴 글귀로 유명한 말이다.
이익을 보거든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거든 목숨을 바쳐라.

[出典]
논어(論語)-헌문편(憲問篇).

[解義]
자로(子路)가 인간완성에 대해 묻자 공자가, "지혜,청렴,무욕,용감,예능을 두루 갖추고 예악(禮樂)으로 교양을 높혀야 한다.
그러나 오늘에는 이익을 보면 정의를 생각하고[見利思義], 위태로움을 보면 목숨을 바칠 줄 알고[見危授命], 오랜 약속일지라도 전날의 자기 말을 잊지 않고 실천한다면[久要不忘平生之言] 역시 인간완성이라고 할 수 있다."고 답한 구절이다.

바꾸어 말하면 이 글귀는

    "정당하게 얻은 부귀가 아니면 취하지 않는다"
    "의를 보고 행하지 않는 것은 용감함이 아니다"
는 뜻을 담고 있다. 좋은 글 나누기 참조


국가안위 노심초사 (國家安危 勞心焦思)

[字解]
國(나라 국)
家(집 가)
安(편안 안)
危(위태할 위)
思(생각할 사)
勞(일할 노)
心(마음 심)
焦(그슬릴 초)
思(생각할 사)
노심초사(勞心焦思)는 마음으로 애를 쓰며 속을 태우다 라는 뜻.

[出典]
맹자(孟子)-등문공상(藤文公上). 사기(史記)-월왕구천세가(越王句踐世家).

[解義]
노심(勞心)은 "마음을 수고롭게 하다" 라고 풀이되며, 맹자 등문공 상편(上篇)에 "혹 마음을 수고롭게 하는 자도 있고, 힘을 수고롭게 하는 자가 있는데, 마음을 수고롭게 하는 자는 남을 다스리고, 힘을 수고롭게 하는 자는 남에게 다스림을 당한다[故曰 或勞心 或勞力 勞心者 治人 勞力者 治於人(고왈 혹노심 혹노력 노심자 치인 노력자 치어인)]"라고 하여 이것저것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초사(焦思)는 "생각을 치열하게 하다" 라고 풀이되며, 사기 월왕구천세가에 "오나라가 이미 월나라의 구천을 풀어주자 월왕 구천이 나라로 돌아와서 이에 몸을 수고롭게하고 속을 태우면서 앉아 있는 자리 옆에 쓸개를 놓아두고 앉거나 누우면 쓸개를 바라보았으며 먹거나 마실 때 또한 쓸개를 맛보았다[吳旣赦越 越王句踐反國 乃苦身蕉思 置膽於坐 坐臥卽仰膽 飮食亦嘗膽也(오기사월 월왕구천반국 내고신초사 치담어좌 좌와즉앙담 음식역상담야)]"

[參考]
國家安危勞心焦思(국가안위노심초사: 국가의 안위를 걱정하고 애태우다)
(http://www.contest.co.kr/97/patriot/html/umuk_kukga.html)



위국헌신 군인본분 (爲國獻身 軍人本分)

[字解]
爲(위할 위)
國(나라 국)
獻(바칠 헌)
身(몸 신)
軍(군사 군)
人(사람 인)
本(근본 본)
分(나눌 분, 직분 분)

나라 위해 몸을 바치는 것은 군인의 본분이다 -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당시 30세)는 여순감옥에 투옥된다. 당시 안중근 의사의 간수를 담당한 사람은 치바 도시치(당시 25세)라는 일본인 청년. 민족독립에 대한 안중근 의사의 간절한 염원에 감동한 치바는 간수와 죄수라는 관계, 국적의 차이라는 한계를 초월하여 안중근 의사와 깊은 우정을 나누게 된다. 1910년 3월 26일 사형장에 나가기 직전 안중근 의사는 같은 군인 출신이었던 치바에게 그의 생전 마지막 글을 써주었다.

'위국헌신군인본분(爲國獻身軍人本分,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은 군인의 본분이다.)'.
일본으로 돌아온 치바는 안중근 의사의 영정과 묵서(墨書)를 불단에 바치고 명복을 빌면서 한일 양국의 친선과 평화를 염원하였다. 그가 사망한 후 유족들은 이 글을 1979년 안중근 의사 탄생 1백주년을 맞아 서울 남산에 있는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 기증하였다. 치바가 잠든 다이린지에서는 이 일을 기념하고 안중근 의사와 치바의 아름다운 우정을 기리기 위해 1981년 3월 26일 현창비(顯彰碑)를 건립하였다. 사찰 본당에는 안중근 의사와 치바의 영정, 안의사의 묵서 사본이 걸려 있다.

이 작품은 일본 도쿄 무사시노에 살고 있는 사토 가즈오(佐藤和男)가 1994년 6월 부친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발견한 것으로, 안 의사가 중국 뤼순(旅順)감옥에 투옥 중이던 1910년 2월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안중근 의사를 모신 사찰 다이린지(大林寺) 참조

안 의사의 유묵은 실물과 사진본을 합쳐 국내외에 54편이 확인되고 있으나, 국내에는 '국가안위노심초사'(國家安危勞心焦思)를 비롯한 24편만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 보물로 지정돼 있고 '독립'(獨立) 등 나머지 30편은 일본과 중국 등 해외에 산재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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