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물 게 시 판




  조성환(2014-10-29 02:43:24, Hit : 340, Vote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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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모곡 (思母曲)



사모곡 (思母曲)



서경선



나의 어머님은 1914년 6월에 태어나셔서 1979년 6월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올해는 탄신 100주년을 기념하는 기념 전시회, 서집 발간 등이 제자들(갈물 서회)의 주최로 6월에 있었고, 11월에는 서예가 갈물 이철경 그리고 여성계 원로지도자 이철경을 재조명하는 세미나가 계획되어 있습니다.

어머님은 어려서 부터 신동으로 소문난 분이어서 그 총명함과 손재주가 유명하셨다고 하십니다. 마지막 까지 기억되는 모습은 한글 궁서체를 개발하시고 전파하신 선구자적인 서예가이셨지만 대학에서의 전공은 피아노로 음악 교사생활을 오래 하셨습니다. 집에서 어머님의 피아노 연주(주로 베토벤의 초기 및 중기 소나타들), 그리고 노래 (독일가곡, 한국가곡, 및 오페라아리아 등)들을 자주 듣고 자랐으며 어머님이 쓰시던 악보들로 피아노를 공부했고. 종이가 낡아서 부서져 가고 있지만 이곳에 이사할 때에도 소중하게 간수하여 가지고 왔습니다. 아쉬운 것은 어머님의 유품 중에 대학에서 쓰신 작곡 노트가 있었는데 피아노를 위한 왈츠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악보가 아름답게 사보되었는지 어머님의 필체의 뛰어남이 그대로 나타나 있었습니다. 아쉽게도 그 악보를 지금 보관하지 옷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결혼 후, 미국으로 옮겨 다니는 동안 그 노트까지는 가지고 다니지 못했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이사를 여러 번 하는 동안에 그 노트는 잊고 있었으며 어머님도 이사하시는 동안에 잃어버리신 모양입니다. 정말 아쉽다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어머님께서는 둘째 딸이 음악, 그중에서도 작곡을 전공하겠다고 일찍이 결정했을 때, 어머님이 하고 싶어 하셨던 일을 딸이 하려고 하는데 대하여 얼마나 기뻐하시고 큰 기대로 격려하셨는지! 대학과 대학원 졸업 연주회는 물론, 유학 후 귀국하여 작곡가들 그룹에 끼어 창작곡을 발표할 때 마다 꼭 참석하셨고, 또 아시아 작곡가 연맹에 가입되어 자주 외국에서 개최되는 음악제에 작곡가로서 참석하기 위해 출국할 때 마다 가능한 한 공항까지 데려다 주시곤 하셨습니다. 외국 여행이 지금처럼 흔하지 않은 때여서 공항 나들이도 번거롭고 쉽지는 않은 때였지만, 어머님 자신이 한국 여성단체연합회 회장으로서 세계여성대회에 수차 참석하셔서 국제 행사에서의 체험을 즐기시며 누리셨던 어머니는 나의 활동도 많이 이해하시고 대견해 하셨습니다.

어머님은 글씨는 물론, 문장가로도 대단하셨습니다. 한자어와 한글이 섞여서 이루어진 어머님 글을 우리 형제들은 “독립선언문”에 비유하곤 했습니다. 어머님께서는 친구들의 환갑, 선배들의 고희 혹은 지인들의 기념일 등에는 글을 지으셔서 가리개나 족자를 만들어 선물하셨습니다. 손주들이 태어나서 첫 돌 혹은 두 돌이 되면 시조를 두 수 지으셔서 현판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 시조들을 읽으신 어른들께서는 어린 아이들의 모습이 보고 있는 듯이 떠오른다고들 하셨습니다. 우리 아들 영홍이에게 주신 글을 소개합니다.

앞뒤로 꽉 찬 두상 한없이 담겨질듯 고음으로 자장가 가락장단 잘 맞추고
새까만 두 눈동잔 흑진준양 영롱타 장난감 다루는 양 예사솜씨 아니니
굽실한 갈색 머리엔 시흥조차 넘치네 귀엽게 영리함이 어릴망정 당당타.

(두 돌을 앞둔 외손자 영홍이 사랑스러워 외할머니가 부르고 씀.
일천구백칠십이년 사월 짓고 일천구백칠십사년 어린이날 쓰다)

아직 한글을 깨우치지도 못한 어린 영홍이가 할머님 앞에서 이 글을 또박 또박 외우는 모습을 얼마나 대견해 하시고 사랑스러워 하셨는지 모릅니다. 며느님을 맞으실 때에도 두 쪽 가리개에 아드님과 며느님에 대한 느낌을 글로 지으시고 쓰셔서 폐백 받으실 때 선물하셨습니다. 하지만 딸을 출가 시키실 때엔 섭섭한 마음 뿐이셨는지 글을 지어 주지 않으셔서 제가 가끔 투정을 부리곤 했습니다.

어머님은 일생 한복만을 입으셨습니다. 바느질 솜씨도 뛰어나셔서 모시 깨끼적삼을 지으시는 솜씨는 매우 유명하셨습니다. 중학교 때, 교감 선생님께서는 가끔 제게 바느질거리를 심부름 시키셨습니다. 1.4 후퇴 때에는 대전까지 피난을 갔었는데 아버지께서는 경기도청이 경남 어느 곳으로 옮겨 가 있어서 직장을 따라 혼자 그 곳에 가 계셨고 우리는 어느 민가에 방을 두개 빌려서 살았습니다. 다섯 남매를 데리고 살아가야 하니, 대문에 “내재봉소”라는 표지를 붙여 놓고 바느질을 시작하셨습니다. 하지만 이것으로는 유지할 수 없었음으로 충남 도청에 학무과에 찾아 가셔서 이력을 말씀드리니 충남여고에 음악 교사로 취직이 되셨습니다. 당시는 전쟁 중이어서 합창부에 반주자로 미군부대 위문을 다니셨는데 곱게 물들인 모시 한복에 머리는 쪽은 안 찌셨지만 단정하게 넘겨 빗으셨고, 예리해 보이는 무테안경을 쓰신 모습은 매우 단아하고 고전적인 한국 전통 여인의 모습이셨습니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도저히 볼 수 없는 모습이었고 미 국가를 반주하는 이 한국의 우아한 중년 여인의 모습에 미군들이 열광하는 것은 당연하였을 것입니다.

어머님은 음식 솜씨 또한 빼어 나셨고, 어린 딸에게 신선로 고이는 일을 꼭 따라하도록 시키셨고 약식, 약과, 식혜 등등의 명절음식을 만드는 것을 거들게 하셨습니다. 만두, 빈대떡 등의 음식 외에도, 수란, 여러 가지 찜 종류 등의 한국 음식은 물론 휴일에는 간식으로 팬케이크와 도넛을 만들 어 주셨습니다. 어렸을 때엔 부엌에 항상 일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보통 음식 보다는 명절 음식 만드는 것을 배운 셈입니다. 8.15 해방 후에서 6.25 전쟁 직후 까지 우리가 살던 창천동 (신촌역 앞)은 몇 가구 안 되는 자그만 동네였습니다. 그리고 앞산에는 일제 강점기에 파놓은 방공호들이 있었습니다. 여기에는 이북에서 남하한 사람들이 어렵게 살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늘 간장, 된장, 고추장을 넉넉히 담그셔서 얻으러 오는 이들에게 기꺼이 나누어 주셨습니다.

40대에는 몸이 약해 지셔서 일을 많이 줄이셨다가 여러 고등학교에 서예 강사로만 지내셨는데 김활란 총장께서 금란여자 중고등학교를 설립하시면서 교감으로 부르셨습니다. 결국에는 교장으로 추대되어 정년퇴임 까지 많은 사회 활동을 하셨습니다. 정년퇴임 이후에도 활발한 서예 및 사회 활동(기독교 미술인 협회, 대한 적십자사, 여성단체협의회 등) 을 하셨고 제 1회 신사임당상을 비롯하여 많은 수상과 훈장을 수훈하셨습니다.

어머님은 간 질환으로 마지막 2,3년을 병상에 계셨습니다. 특히 마지막 며칠을 제가 모실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큰 축복이었습니다. 어머님은 주장이 강하시고 엄격하신 분이셨습니다. 당시에 몹시 바쁘게 지나던 때라 식사 시중이랑 참으로 걱정스러웠습니다. 어머님의 의견을 여쭈어 보면 너 편한 대로 하라고 하시면서 의견이 없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게 보이신 모습은 더할 수 없이 깨끗하시고 온순하신 모습이었습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갈 때엔 저렇게 완벽해 져야하는구나 하는 교훈을 주셨습니다.

어머님이 금란학교에 전임으로 일하신 후, 나는 결혼하면 절대로 직장을 갖지 않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어머니처럼 많은 일을 하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전문적인 캐리어 우먼으로 일생을 살았고 이제는 은퇴하여 이 곳 Laguna Woods에서 편안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어머님이 떠나신 후, 답답함과 그리움을 이제는 어머님의 글씨를 보면서 풀어 갑니다.

탄신 100주년에 어머님을 회상하여, 둘째 딸 경선이가 이 글을 드립니다.


(2014년 7월 4일)





조성환 (2014-10-29 02:51:32)  
이 글은 미국 California주 Orange County에 있는 Laguna Woods Village의 첫 입주 50주년을 기념하여 라구나 우즈 한인 책 클럽에서 출간(2014년 10월 17일)한 "LWV 한인들의 이야기"에 실린 것을 옮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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