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물 게 시 판




  서경선(2012-06-30 12:49:16, Hit : 987, Vote : 38
 사모곡

나에게 6월은 기억해야할 많은 날들이 가득한  달이다.  그 중에서 가장 마음을 아리게 하는 날들은  어머님과 아버님의 추도일인데, 두 분 모두 6월에 1년 차이로 소천하셨다.
어머님은 태어나신 날도 6월이신데 우리는 그 생신날에 결혼식을 올렸다.  아버님은 6월생인 둘째 사위의 생일에 소천하셨다.  아름다운  5월, 부모님 날, 스승의 날, 아들 생일, 그리고 손녀의 생일이 끝나면 슬픔과 기쁨이 교차되는 그러나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6월의 나날들을 지내곤 한다.

어머님은 외할아버님으로 부터 유교의 윤리관과 기독교 신앙을 토대로 한 교육을 받으셨는데, 외할아버님께서는 의학을 전공하셨으면서도 교육자의 길을 택하셔서 배화여고 등에서 교편을 잡으셨다.  일제 시대에는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홍원 감옥소에서 옥고를 치르시기도 했었다.  어머님이 늘 말씀하시던 외할아버님은 사회적으로는 민족주의자이시고 종교인이셨으며, 할아버지께서 남기신 “조선 교육사 상하권”은 많은 교육학자들의 참고서적이 되었으며, 특히 이 책의 상권은 당시를 참고할 수 있는 유일한 서적으로 알려져 있다.
어머님은 외할아버님으로부터 좋은 교육과 영향을 받았지만, 그토록 존경하며 사랑하던 친정아버님 때문에 너무나도 힘든 삶을 사셔야 했다.   외할아버님이 교육자로서, 한글학자로서 너무나도 유명하고 존경을 받던 분이었으나 해방 후에 이북으로 가셨기 때문에 누구의 따님이고 사위라는 이유로 나의  부모님이 겪으신 불이익과 불안한 생활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었다.  
어머님은 지금의 경기여중에 입학하셨었지만 피아노 배우기를 소원하셨고, 외할아버님께서는 일본 학교인 경기여중에서 한글을 가르치지 않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시던 터라, 경기여중에서 2 년을 마친 후, 기독교 학교인 배화여중으로 전학하도록 하셨다.  그 후 배화와 이화여전 음악과에서 피아노를 전공하셨는데, 배화여고 재학시에 종교교회에서 세례를 받으셨고, 이화전문 시절에는 성가대 봉사를 통해 신앙생활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다.  어머님은 음성도 아름다우셔서 어머님은 피아노를 치시며 노래 부르시기를 즐기셨고 이 모습은 내 생활의 일상이었다.  어머니가 연주하시던 베토벤의 “비창” 쏘나타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내가 서울예고에 입학하여 작곡 공부를 시작하기로 했을 때,  어머님께서는 얼마나 반기셨는지!  작곡가가 되어 작품이 연주될 때마다 어머님은 꼭 참석하여 들어 주셨고, 외국에서 개최되는 음악제에 참석하기 위하여 출국할 때마다 꼭 공항까지 배웅해 주셨다.

나는 9.28 수복 후에 창천감리교회에 다니면서 중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는데, 나는 그때 수요일 저녁 예배에  풍금으로 반주를 했다.  X-Mas 새벽송 성가대를 어머님께서는 정성껒 준비한 음식으로 늘 환대하여 주셔서 성가대는 의례히 맨 마지막에 우리 집에 들르는 것으로 정해 있었다.  오빠가 중고등부 임원이 되어서는 어머님께서 모든 뒷바라지를 해 주셨다.  쌀을 씻어서 방아간에서 떡 해오는 일, 김치 가져가는 일 , 그리고 동네 사시는 교회 어른들과 가까이 지내시어 자주 집에 오시곤 했다.  그 중에 목사님 한 분은 어머니와 본인의 여러가지 중요한 일들을 의논하시느 것 같았다.  이때까지 어머님의 본격적인 교회 생활은 없으셨다.  

어머님이 창천감리교회를 섬기시게 된 것은, 큰 자부를 보신 이후인데, 기독교 가정에서 성장한 큰 올케의 회고에 의하면 어머님께 교회 출석을 하시도록 권고하여 처음에는 며느님과 함께 지인이 많은 정동교회, 그리고 이화여대 대학교회 등에 출석하셨는데, 어머님의 배화여고 시절 은사셨던 창천교회 전선애 장노님 (조만식 선생의 부인)께서 창천교회로 인도하셔서 등록하시게 되셨다고 한다.  교회에서 시행한 베델성서반 1기생으로 며느님과 함께 공부하셨는데 1등으로 수료하셨다고 한다.

어머님께서는 외할아버님의 특별한 교육으로 한글 궁체의 서예를 배우셔서 초등학교 습자 책등을 출판하셨고, 모든 경연대회의 심사위원을 역임하셨으며, 여러 고등학교에서 특별활동시간에 붓글씨를 가르치셨다.  여름방학이 되면 지방에서 교편을 잡은 제자 한 분이 짐을 싸들고 우리 자매가 자는 방에서 기거하며 글씨를 배우곤 했는데, 나중에 한글 서예의 대가가 되었고, 어머님께 극진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어머님은 회갑기념으로 서예전을 개최하셨고, 갈물 (가을물의 준말로 어머님의 호) 서예회를 조직하셔서 한글 궁체를 보급하고 서예 인구를 확대하는 일에 매진하셨다.  
어머님의 솜씨는 붓글씨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어렸을 때 둥근 밥상에 둘러 앉아 낡은 영어 사전을 뜯어 종이 접기를 가르쳐 주셨는데 그 중 화로접기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고 다른 어느 곳에도 자료가 없어서 지금도 어딜가나 어린아이들에게 인기를 누릴 수 있는 나의 재산이 되었다. 바느질 솜씨가 뛰어 나셨고, 요리 또한 특출하셨다.  어머님이 휴일에 만들어 주시던 팬케익은 정말 맛있는 간식이었다.
문장력 또한 뛰어 나셔서 친구들의 환갑 때엔 손수 축하 시조를 지으셔서 족자나 현판으로 만들어 선물하셨다.  자부들을 맞으실 때에는 두 쪽 가리개에 아드님과 며느님을 위한 글을 각각 지으셔서 결혼 선물로 주셨고, 친 손자, 손녀, 외손자 들의 돐 때에도 그 사랑하시는 마음을 시조로 지으셔서 현판으로 만들어 주시기도 했다.  
아쉽게도 그 영광스러운 모습을 직접 뵙지는 못했지만, 제1회 신사임당 상을 수상하신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젊은 시절에는 여러 여학교 음악 교사를 하셨지만 금란여고 교감으로 일하시기 전 몇 년 동안은 건강이 안 좋으셔서 (갱년기 장애로 추측되는)  전임 교사일은 안 하시고 여러학교의 특활을 담담하시는 특별 서예강사를 하셨다.
1960년 이화여자대학교 김활란 총장님께서 금란여고를 설립 개교하시면서 어머님을  교감으로 일하도록 부르셨다.   이후에는 학교 직책 외에도 기독교미술인협회, 여성단체연합회, 대한적십자회 등의 사회 단체에서 많은 일을 하셨다.  몇 년 후에는 교장으로 일하시며 학생들에게 성경 공부와 예배시간에 설교도 자주 담당하셨다.  창천감리교회에서는 짧은 권사 기간을 거쳐 곧 장로님이 되셨다.

결혼, 그리고 미국 유학 등으로 어머니와는 같이 지내는 시간이 한 동안 끊겼었고 어머님의 생활을 잘 알지 못했었는데 귀국하여 어머님과 만나면서 그리고 어느 해인가는 송구영신 예배에서  어머님의 대표 기도를 들으면서 정말로 변하신 모습에 새롭게 어머님을 대하게 되었다.  교회에서 모든 중요한 절기 예배에는 대표 기도자로 스셨고 많은 교인들의 존경을 받는 중요한 지도적 신앙인이 되어 계셨다.

어머님은 75세로 세상을 뜨셨는데 마지막 열흘 정도를 나와 함께 지내고 가셨다.  이 동안 보여주신 어머님의 모습은  정말로 감동이고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운 완벽한 신앙인의 모습이셨다.   오빠 식구와 함께 사시던 중,  집을 대대적으로 수리하게 되었다.  어머님은 우리 집에서 지내시기로 정하셨다고 연락하셨다.  물론 대환영이고 흥분할 일이었지만 한편으로는 크게 걱정해야만 했다.  당시에 나는 무척 바쁜 생활을 했고, 편찮으신 어머님을 모실 일이 참으로 걱정이었다.  다행히도 아들 홍이가 대학에 입학은 한 후였고, 집에 오는 도우미 아주머니가 매우 훌륭한 분이었다.
식사를 특별히 준비해야만 하는데 틈을 내어 매일 신선한 생선을 사야 했고 이를 소금기 없이 심심하게 요리해야 했다.   어머니와 함께한 마지막 10여 일 간은 어머님께 둘째 딸이 얼마나 바쁘게 살고 있는지, 그리고 외손자 영홍이가 얼마나 사랑스럽고 아빠와 정말 좋은 관계의 아들이라는 것을 보여드린 기간이었고, 나에게는 어머님의 마지막 깨끗하고 본인의 고집과 모든 욕심을 다 버리고 이 세상에서의 짐들을 다 내려 놓으신 아름답고 거룩한 모습을 남기시었다.

정말 귀한 선물을 남기고 하늘 나라로 떠나신 어머님,  6월이 되어 더욱 그립고 몹씨 뵙고 싶습니다.  하늘 나라에서 편히 그리고 후손들을 위해 기도하고 계실 것으로 믿어 감사드립니다.
둘째 딸, 경선이가 어머님을 그리워 하면 6월의 끝자락에서 이글을 어머님께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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